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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효행길은 삼남길의 6번째 길이며 총 7.7km의 거리이다. 공식홈페이지에서는 1시간 50분 정도의 코스로 소개되어 있는 길이며 5코스에서 6코스나 6코스에서 7코스 식으로 두 개의 코스를 하루에 마무리 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유는 교통편이 썩 좋지 못하는 사실 때문. 어쨌든 화성효행길은 황구지천의 세마교를 시작으로 배양교를 시작으로 해서 세마교까지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코스의 난도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교통편이 문제지. 사실 이 삼남길을 걸으며 겪었던 좀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바로 대중교통이 생각보다 서울에만 집중되어있지 경기도권만 가도 외진 곳은 불편하기 짝이없다. 하루에 몇 대밖에 버스가 다지 않거나 아니면 배차간격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현실적인 문제(이용 인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불편했다.

 

삼남길 제6길(화성효행길)

배양교 → 세마교

 

스탬프함 위치(1곳)

용주사: 용주사 주차장 해설사의 집 옆(화성시 용주로 136)

 

경기옛길 공식홈페이지(코스 정보 및 우회길 등 실시간 안내)

경기옛길 (ggcr.kr)

 

경기옛길

경기옛길 - 역사문화탐방로 경기옛길 소개, 도보여행, 역사, 문화유산, 운영프로그램 등 정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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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글: 경기옛길 삼남길 제6길(화성효행길) #1

2023.12.09 - [기타] - [도보 여행] 경기옛길 삼남길 제6길(화성효행길) #1

 

[도보 여행] 경기옛길 삼남길 제6길(화성효행길) #1

화성효행길은 삼남길의 6번째 길이며 총 7.7km의 거리이다. 공식홈페이지에서는 1시간 50분 정도의 코스로 소개되어 있는 길이며 5코스에서 6코스나 6코스에서 7코스 식으로 두 개의 코스를 하루에

koolsoul.tistory.com

 

시작(2023. 4. 8.)

스탬프함. 위치는 용주사 문화해설사의 집 옆 부근에 있다.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있음

용주사 주차장

용주사 버스 정류장을 뒤로하고 남은 코스로 고고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안녕초등학교. 초등학교 이름이 귀엽다.

나지막한 산. 이름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독산성이랑 세마대가 있는 곳인듯.

논과 밭 그리고 아파트

사다리꽃 모양의 저수지, 만년제

화성시 안녕동에는 만년제(萬年堤)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있습니다. 만년제는 수원의 만석거나 축만제처럼 정조 임금이 인공적으로 조성했던 여러 저수지 중 하나입니다. 만년제는 강이나 천의 한쪽을 막아서 조성하는 보통의 저수지와는 달리 사방에 제방을 쌓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었고, 저수지 가운에는 동그란 섬을 조성했습니다. 모양도 독특하지만 그 기능과 역할 역시도 무척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의 전답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담당하는가 하면, 독특한 모양과 위치 때문에 만년제를 융릉의 풍수지리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만년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결국 원래의 모습을 많이 상실하고 말았지만 최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복원계획도 진행중입니다. 만년제가 다시 어떤 모습으로 복원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봅시다.

 

코스에는 없지만 만년제에 대한 설명판이 있어 찍어봤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생각나는 농수로.

아까 지나갔던 안녕초등학교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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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복판에 자란 나무. 원래 나무를 자르지 않고 그 위로 포장을 한거 같다. 새롭네.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세계유산 융릉과 건릉

융릉은 훗날 장조의 황제로 추존된 장헌세자(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로 추존된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입니다. 정조는 1789년(정조13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장헌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을 수원도호부 화산(현 화성시 화산동)으로 옮기며 현릉원으로 새로 명명하였습니다.

이후 고종이 1899년(고종36년)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하며 현륭원도 융릉으로격상하였습니다. 현륭원의 석물은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 꽃봉우리 모양의 인석, 신체의 비례감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문·무인석 등에서 사실상 왕릉과 같은 격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던 정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건릉은 정조와 그의 부인 효의왕후의 합장릉입니다. 1800년 정조의 승하 즉후 현륭원 동쪽에 조성되었다가 1821년 효의왕후와 합장하여 현륭원 서쪽으로 이장, 오늘날의 건릉이 되었습니다. 

효의 고장 화성시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융릉과 건릉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0년 사적 제 206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역시 코스에는 없지만 안내판이 있어 찍어보았다.

옛 수원도호부의 행정중심지였던 화산동

경기도 화성시의 동쪽에 위치한 화산동은 2006년 태안읍 안녕리, 송산리, 황계리가 하나의 법정동으로 통합되어 형성 되었습니다. 화산동의 명칭은 옛 수원시도호부의 주산(主山)이자 현재 융릉, 건릉이 위치한 화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는 화산의 뜻에 대하여 8백 개의 봉우리가 이 한 산을 동그랗게 둘러싸 보호하는 형세가 마치 꽃송이와 같다 하여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인 현릉원을 조성하기 전까지 이곳은 객사은약현(동헌), 사창군기고, 공극 등 수원도호부의 관아가 위치한 행정중심지였습니다. 

옛 수원도호부의 행정중심지였던 화산동은 현재 융릉과 건릉, 용주사, 만년제 등 정조의 효심이 깃들어 있는 문화유적이 자리하고 있고 호텔 등의 숙박시설과 풍부한 먹거리 식당이 즐비하여 많은 관람객들이 즐겨 찾는 역사문화관광단지로의 면모를 갖추가고 있습니다.

황구지천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성효행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년교와 안녕IC 1교. 황구지천은 실개천이 아니고 개울 수준으로 넓어서 좀 놀랐다.

황구지천은 점점 넓고 깊어졌으면 건너편에는 서오선TG가 보인다.

화산동 주민자치회 1기가 설치한 벤치

코스 끝 부분에 있던(세마교 앞) 솟대

황구지천을 넘는 다리, 세람교

정조 능행길의 마지막은 오산과 화성의 경계를 이루는 황구지천을 건너는 일이 었습니다. 이때 세람교를 건넜다는 기사가 등장합니다. 다만 세람교는 정조 이후에 불려진 이름이고 그 이전에는 '봉학교'라 불리었습니다. 세람교의 위치를 표시한 표석이 다리와 함께 서 있었지만 1970년대 다리 부재를 이용할 목적으로 파손되었고, 남아있던 흔적의 일부는 문화재보호재단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다른 이름인 '학교' 표석은 한신대학교 박물관 앞 등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어쩐지 이 앞 다리 이름은 세마교였다. 세람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어쨌든 이렇게 제6길 화성효행길을 마무리지었다. 다음은 제7길 독산성길을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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